김호상의 문화유산둘러보기 ‘폐족 된 선비라도 사람 구실은 해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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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피첩(보물제 1683-2호, 국립민속박물관소장)

설명) 하피첩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아내 홍씨부인이 바래고 해진 치맛감 여러 폭을 부쳐오자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을 직접 짓고 써준 것이다. 다산은 보내온 아내의 치맛감을 보고 아내의 사랑과 아내의 고단함을 함께 느꼈을 것이지만, 홍씨부인은 귀향가 있는 남편에게 어떠한 마음으로 치맛감을 보냈을까? 다산의 나이 49세 때였다. 다산의 나이보다 두 살이나 많은 나는 아직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가을날 유배지에서 받았을 아내의 물품을 보며, 연분홍치마가 날리던 봄날의 좋은 기억을 생각하며, 자식들에게 교훈이 될 글을 지어 보냈다면 마음이 참 편안할 것 같은 벚꽃 흐드러지게 핀 봄날 오후이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선비는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서, 특히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 또는 신분계층을 가리킨다. 선비는 관직에 나가면 임금의 바로 아래인 영의정에까지 오를 수 있는 계층이었으며, 혹은 산림 속에 은거하여 있더라도 유교의 도(道)를 강론하여 밝히고 실천하는 임무를 지니는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신분이었다. 선비는 자신의 덕을 사회 속에 실현하기 위해서 일찍부터 과거시험을 치고 벼슬할 기회를 찾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비들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였고 소수의 선비들만이 과거시험을 거쳐 관직에 나가게 되었다.

선비가 관직에 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나 관직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관직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펴고 신념을 실현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관직에 나가면 상관을 받들어야 하고 더구나 가장 높은 권위인 임금을 섬겨야하며 아래로는 백성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을 져야했다. 그러므로 선비는 언제나 관직에 나가서도 그 직책의 성격과 임금의 역할에 대해서 성실하며 임금의 잘못이 있으면 간언하여 잘못을 바로 잡으려하고, 바른 도리가 실현될 가능성이 없거나 직책이 도리에 합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물러 날 수 있어야 올바른 선비였다.

올바른 선비는 벼슬에 나가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산림 속에서 스승을 만나 학문과 도리를 연마하고 후진을 가르치며 벗들과 도의를 서로 권하고 힘썼다. 학문에 깊은 조예를 이루어 후생을 많이 가르치고 바른 도리를 제시 할 수 있으면 선생(先生)으로 일컬어지고, 선생은 벼슬에 나간 사람의 호칭인 공(公)에 비교해 보아도 훨씬 더 높은 존경을 받았다.

선비가 되어 관직에 나아갔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많은 고난이 따르기도 한다. 특히 현실정치에서 추방당하고 잃어버린 권력의 고독과 싸워야 하는 유배살이를 해야만 했던 선비들이 있었다. 이들은 권력투쟁에서 실패하였거나 때로는 사상적 이유 때문에 추방을 당하기도 했지만, 집권층의 보수적 논리에 비판적 자세를 취하는 말 한마디, 시 한 구절, 글 한편이 이유가 되어 형극의 고난을 당하여 유배 간 선비들이 많았다.

그런 유배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고통이 원인이 된 일에 대해 시대적 모순을 발견하여 학문과 문학, 사상적 측면에서 큰 업적을 이룩한 부류가 있었던 반면, 예전 지위로의 복귀를 꿈꾸며 자신의 현실적 아픔이나 달래려고 풍류로 세월을 보냈던 부류들도 있었다. 이러한 두 부류의 선비 중 우리는 진정한 선비가 어떠한 모습인지 잘 알고 있다.

정치적 반대파에 몰려 원대한 포부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18년의 긴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야했던 다산(茶山)선생이 자식들에게 ‘우리는 폐족(廢族)이다. 그러나 폐족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랴. 폐족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성인이 되지 못하겠느냐, 문장가가 되지 못하겠느냐’ 말하고 있다.

우리는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에도 우리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쉽게 체념하지 말고 폐족 된 선비의 신세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참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전념하여 살아간다면 일의 성패와 관계없이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 말은 지금의 나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kit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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