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상의 문화유산둘러보기 ‘지금도 꿈을 꾼다. 태양의 열정으로’
사진) 중남미문화원 홍갑표설립자(우측 2번째)와 기념촬영(2016.7.23.)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중남미문화원방문에 김주현 전 행자부차관님 내외, 허성관 전 행자부 장관님 내외, 이복형 중남미문화원장님 내외분과 저희 부부가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고 매우 감동 깊은 하루였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예약 없이 [중남미문화원]을 찾아 이복형원장님과 홍갑표 설립자 내외분을 위해 즉석 공연해준 [룩스 트리오(LUX TRIO)]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한 사람의 집념과 끈기가 이렇게 큰 결과물을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두 눈으로 보지 않고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의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강릉에 있는 [참소리축음기 에디슨박물관]의 손성목관장, 경주에 소재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의 유충희관장과 [신라역사과학관]의 석우일관장 등이 있었지만 지난주 토요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문화원]을 다녀오면서 또 한사람의 위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고양시에 소재한 중남미문화원의 설립자 홍갑표 이사장이다. 석우일 관장님이 [신라역사과학관]을 만들면서 30년 전 대학생인 나에게 남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 ‘마누라라고 하는 산’ 이라고 농담 삼아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아니 그런데 [중남미문화원]을 설립한 분은 이복형원장님이 아니라 부인 홍갑표이사장이다. 어려운 가정에서 출생하여 고난을 견디어 자수성가한 후 지위와 물질적인 풍요가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의 공익을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잃을 지도 모를 위험한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여성이라면 가족에 대한 안정이 우선이기 때문에, 더욱 자식과 손자 손녀들이 있는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홍갑표 이사장님 앞에서 자존심 없이 무장해제 당했다.
홍갑표씨는 한국전쟁 피난시에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 외교관이 된 남편을 따라 중남미지역에서 30년 넘는 세월을 보내면서 그 지역의 유물과 미술품을 수집했고 1993년 남편의 공직은퇴와 동시에 남편의 전퇴직금을 털어 재단법인 중남미문화원 병설 박물관을 지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미술관과 조각공원, 종교전시관 등등을 설립하여 현재까지도 열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일련의 어려움은 죽음을 생각할 만큼의 고통스러운 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룬 분이다. 그분이 어떠한 분인지 설립자 홍갑표님이 쓰신 자서전 [지금도 꿈을 꾼다. 태양의 열정으로. 2013, 새담디앤피]의 일부를 발췌하여 문화유산편지 가족분들에게 그분을 소개해 본다.
1. 몰락한 가문의 팔남매 늦둥이 막내로 축복받지 못하고 세상에 태어나서 어린시절, 잠결에 어른들이 하시는 ‘저 웬수만 없으면 내 무슨 걱정이 있겠나’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며 결심했다. 얼마나 힘이 드시면 나를 원수라고 표현하실까. 나는 스스로 나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자고, 그 덕분에 자립정신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법을 터득 할 수 있었다. 이후 초등학교를 졸업 후 중학교를 가기위해 열세살 나이에 나는 ‘대한민국 여자신문팔이 제1호’가 되었다.
2. 프리마켓을 돌아다니다 보면 골동품도 있지만, 조상의 사진이 가득 담긴 박스가 굴러다니기도 한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모두 귀족들의 사진인데, 문득 ‘조상을 귀하게 여긴다면 어찌 저렇게 함부로 할까. 나도 손주, 증손주가 생기면, 내 새끼들도 저렇겠지’ 라는 생각에 이르면 사는 것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다. 생존했을 당시에는 귀중했을 그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하고 중얼댔다.
그 귀한 천불짜리 골동품을 백불도 안 되는 빵 값에 바꿔 먹은 자들이 바로 그들의 후손들인데, 내 후손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그래도 생존해 있는 동안 그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주라고 또 얼마나 귀여워했을 것인가. 하지만 돈이 되지 않으니 내다 버린 것이다. 그때의 일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아 그 후로는 나는 여간해서 남에게 사진을 주지도, 찍지도 않는다. 나 죽고 난 후에 언젠가는 버릴 사진은 찍어 무엇 하랴.
3. 나의 진심을 몰라주는 이들에게 속이 상하다가도 햇살 속에서 즐겁게 웃고 사진 찍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날 때면, “나 이거 만든 할머니야. 이다음에 너희들이 커서 시집, 장가간 후 너희 아이들하고 여기에 다시 오면, 이곳을 만든 할머니 만났었다고 애기해 줄래” 하면 “네!” 하고 밝게 대답해 주는 아이들에게서 다시금 커다란 행복과 에너지를 얻는다. 그리고는 ‘그래, 너희가 크면 이 세상은 달라져 있겠지 라고 중얼거리며, 돈 많고 마음 씀씀이 가난한 부자보다 나눌 줄 아는 마음의 부자가 더 존중받고 인정받는 세상을 꿈꿔본다.
이복형원장님, 홍갑표 이사장님 부디 강건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